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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공유기 기초 그리고 오묘한 한계
    컴퓨터/공유기 2022. 5. 7. 13:23

    1.

    그동안 오래 프로그래머로서 살아왔지만 사실 집에는 10만원 넘는 공유기를 쓸 일이 없었다. 게임 하고 인터넷 보고 해커가 내 컴퓨터에 들어와 봤자 가져갈 건 만화 영상 뿐이었으니까 말이다. (난 집에 소스도 보관하지 않는다. 다 북마크로 자료만 모으는 스타일이니까.) 또한 네트워크를 쓸 수 있는 기기는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한정 되어 있기도 했다. 가전기기가 어딜 감히 인터넷을 지원한단 말인가. TV로 해외 만화 등을 보는 건 반드시 PC의 힘을 빌어 연결선을 몇미터씩이나 되는 걸 끌어 출력용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 했었지.

    그러나 가정용 게임기를 필두로 대부분의 기기가 인터넷을 연결하게 되었다. 정말 순식간이었던 것 같다. 그래서 NAS 저장소에 연결해서 편히 애니 본다고 TV도 같은 40인치를 두번이나 바꾸었다.

    그러다 보니 이제 내 홈넷을 집 밖에서도 연결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.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. 공유기에 할당된 외부 ip만 적어서 주소창에 넣으면 되니까 말이지.

    근데 딱 여기까지 했어야 했는데 난 그걸 몰랐다. 도메인도 붙이고 싶고 요새 화두인 보안도 적용하고 하고 싶었기에 xyz 유료 도메인을 행사가로 500원에 산 게 지옥의 시작이었을 줄이야. 그리고 백엔드 서버 프로그래머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최소한의 지식만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. 그동안 코딩 잘 하는 걸로 자랑질이나 했지 그 기반에 있는 프로토콜이나 서버, 수많은 종류의 네트워크 장비들이 구축된 인프라가 얼마나 기적적으로 돌아가는지를 몰랐던 거다. 그리고 홈넷이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는 걸 느끼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.

    2.

    공유기는 hub이다. 집 안에 속해 있는 기기들이 서로 통신할 수 있게 해 준다. 그래서 집안에서 유선 연결기기를 많이 쓰고 싶은 사람은 스위칭 허브란 걸 사서 랜포트만 늘리면 굳이 공유기를 여러대 살 필요가 없다.

    공유기는 NAT다. 집 안에서의 연결을 인터넷으로 보내주고 다시 받고 하게 해 주는 최전선의 물리적인 기기다. 통신사 모뎀이 앞에 있지 않냐고 할 수 있겠다. 그러나 통신사 모뎀이 끊겨도 공유기만 있으면 내부 통신망은 살아있어 여전히 기기끼리 연결할 수 있으므로 집 안의 통신기기라고는 할 수 없다.

    즉 공유기는 기업용 라우터를 저렴하게 만든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.

    3.

    여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 된다. 저렴이 버전이기에 기관이나 기업들이 사용하는 많은 종류의 네트워크 장비들이 조그만한 기계에 쑤셔넣어진다. 그 과정에서 많은 기능들이 소프트웨어로 대신하게 되고 해당 기능들을 모두 연산할 수 없으니 이런저런 기능들이 빠진 진짜 최저한의 기능들만 실행 되도록 되어 있는 거다.

    그리고 안타깝게도 도메인 설정과 유료 인증서 설치도 이 빠진 기능들 중에 속한다. 정확히는 DNS 서버 기능을 하는 공유기는 극히 드물다. 내가 이 글을 작성하는 동안 찾아본 가정용 공유기 중에는 시놀로지의 공유기가 유일 했다.

    이글을 작성하기까지 이미 쓰고 있던 ipTIME를 시작으로 넷기어 오르비 프로, 링크시스 아틀라스 프로 6, 아수스 RT-AX56U를 한달 만에 거치며 깨달은 사실이다. 깨진 돈도 어마어마 하다. 하지만 난 공유기가 이렇게 한계가 많은지는 몰랐고 아는 지식도 얄팍 했기에 돈과 시간을 깨가며 몸으로 때우는 수 밖에 없었다.

    …방금 DDNS가 있지 않냐고 말한 놈은 누구냐. 당장 나와라. 자기 집 문패로 ‘난 홍길동이란 사람이야’라고 하고 싶지, ‘난 무슨 기업의 공유기를 쓰고 있는 홍길동이라는 사람이야’라고 달고 싶지 않다.

    자기만의 멋들어진 고유 도메인을 내 홈 네트워크의 대문격인 공유기에 쉽게 붙일 수 있는 날은 아직 멀은 것 같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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